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ㆍ사랑ㆍ의뢰심을 갖는일
먼저 우리가 왜 절대자에게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동물인가요?
인간은 동물인가요? 인간이 동물인가에 대해서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분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물음은 단순하게 인간이 동물인가 아닌가를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만의 고유성을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현대 생물학적으로 동물입니다. 유전적으로 사람과
에 속하며 가까운 어느 시점에서 고릴라·오랑우탄·침팬치등에서 분리되어 인간으로 진화했습니다. 분류상으로는 대형 유인원류에 속합니다. 유전학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진화 과정의 한 분류로 완전한 유인원에 속하는 동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고유한 사고력을 가졌을까요?
하지만 인간이 일반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뛰어난 사고력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특히 선 경험에 의해서 경험하지 않은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은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탁월한 점입니다.
하지만 사고력의 정도를 가지고 인간을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고유하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인간을 고등동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고유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인간만 감정이 있을까요? 현대 과학은 동물도 감정이 있고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만 예측을 하고 고등사고를 하는 것일까요? 돌고래 등 많은 고등동물 또한 예측을 하고 높은 사고력을 가진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만의 고유한 점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인간만 혼
을 지녔다는 믿음이 있었고, 아직도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뉴론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의 발전으로 우리의 혼
또한 단지 뇌의 뉴론 활동임이 점차 밝혀지고 있습니다. 네, 뇌를 지니고 있는 고등동물 또한 동일한 정의로 본다면 혼
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일반 동물에 없는 고유한 점은 무엇일까요?
영적 존재
하나님을 영적 존재라 합니다. 영적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 세계에 속해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기 보다는 우리가 영적 대상을 볼 수 없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만들어졌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을 모든 동물중에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에서 인간은 물질 세계의 형태이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 즉 물질 존재이자 영적 존재인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존재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영적 존재란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물질세계는 중력, 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그리고 강한 상호작용이라는 4가지 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하는 모든 현상은 이 4가지 힘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들을 하나의 공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4가지 힘을 하나의 아름다운 수학 공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결국에 아름다운 통일장 이론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의 최종 버젼은 여러개의 끈이론을 통일한 M이론입니다.
M이론은 우리 세계가 11차원의 시공간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4차원의 시공간 존재이므로 4차원 이상을 알 수도 느낄수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중력의 힘이 다른 힘에 비해서 현저히 작은 이유로 유일하게 중력만이 다른 차원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한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3차원 공간의 존재이므로 2차원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원 공간에 사는 존재가 있다면 그 차원의 존재는 우리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한 단면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상상하고 사과를 반으로 짤라 그 단면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그 단면만으로는 그것이 사과인지 추측할 수는 있으나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과의 단면은 사과라는 3차원 물질의 2차원 단면일 뿐이므로 2차원에서 3차원 물질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정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4차원 공간의 물질을 단지 단면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차원의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한계가 존재합니다. 4차원 이상의 존재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능력을 축소(차원 하락)하는 방법 뿐입니다.
다시 영적 존재로
그러므로 영적 존재가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려면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 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한계라기 보다는 우리의 한계 때문인데, 우리는 4차원의 시공간 세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 동물과 다른 고유함을 이야기 했을 때 성경의 내용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적 속성
을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영적 속성은 왜 우리에게 발휘되지 않는 것일까요?
관계의 단절과 관계 회복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의 죄에 의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원죄에 의해 영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이 단절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모든것을 이해할 수는 없고 잘 믿어지지도 않지만 말이죠.
어쨌든 현 차원을 인식하는 다양한 감각만 남아있고 영적 세계를 감지하는 감각이 이때부터 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영적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죠.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에서 죽었다 부활한 그 사건에 의해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게 된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크리스찬이 아닌 분들이 다른 의견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고유한 점
다시 돌아와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점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동물이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로 영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을 가졌습니다.
인간은 차원이 끼인 존재
현 물질세계를 고차원의 현상에 대한 그림자로 해석하는 데이비드 봄의 홀로그램 우주
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를 고차원(영적 세계)의 투영으로 물질 세계를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적 세계의 시간 흐름은 우리 세계의 시간 흐름과 다릅니다. 우리 세계에서 즉각적인 어떤 변화가 영적 세계에서 매우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영적세계의 찰나가 우리 세계에서는 한 사람의 한평생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과학적 근거로 시간의 흐름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 정도만큼 다르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있고 이 이론은 실험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M이론에 의해 11차원으로 구성된 전체 차원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보이지 않는 많은 차원들이 존재하고 그곳에 사는 존재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세계를 영적 세계라 부를만 하다는 것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활동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합주곡인 샘입니다.
영·혼·육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영정 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요? 위의 전개에 의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물질적 존재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
- 인간은 오감의 감각을 통해 물질 세계를 이해하고 영적 감각을 통해 영적 세계를 감지하였으나 원죄에 의해 영적 감각을 상실 (차원의 하락)
- 예수님에 의해 상실했던 영적 감각을 다시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 (차원 상승의 기회를 얻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고유한 점은 바로 영
이 있다는 점입니다. 영은 우리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영적 세계에 존재해야 하므로 우리 세계와 영적 세계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혼과 육이 썩어 없어지는 소멸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적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영은 그 세계에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죽은 뒤 천국으로 간다는 의미는 혼과 육은 죽지만 영이 남아 영적 세계에 머무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육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고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구분하며 내 의지에 의해 행동하는 것 모두 혼의 활동입니다. 육은 육체가 가진 본능적인 욕구에 따릅니다. 우리는 예절과 규범을 정해 육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행하지는 않습니다. 혼이 그것을 억제하기도 하고 또는 허락하기도 합니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자의식이 강해 육보다 혼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육이 강해 자제력이 부족해서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
하지만 자의식이 강하면 강할 수록 진리와 진실을 받아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이 확고하고 그 생각으로 내 몸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은 우리 차원에 있지 않고 고차원의 영적 세계에 있으므로 혼이 영을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영적 세계의 영이 내 혼에게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치는가에 따라 영이 혼에 관여하고 통제한다 할 수 있습니다.
영이란?
우리 인간은 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어떤 영을 담느냐에 따라 나에게 다른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영적세계의 영은 비단 하나님의 영 뿐만 아니라 사악한 영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단의 영인데, 사단도 영적 존재이므로 영적 세계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첫번째 하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영을 담을 수 있는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담을 수 있고, 사악한 영인 사단의 영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혼은 영에 영향을 받고 결국에 육까지 그 영향이 끼치므로 어떤 영에게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우리 삶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이왕 하나님의 영에 영향을 받는게 좋지않을까요?
천국과 지옥
천국은 하나님이 사시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받아 그곳에 사는것이 천국에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반대로 사단의 영을 받아 그곳에 사는 것이 지옥에 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과 사는 방법
우리는 원죄에 의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인해 그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받게 되는 하나님의 영(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세상의 영, 사단의 영을 받는다면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영적 세계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실체이나 영적 세계에서 봤을 때 우리 세상은 그림자 같은 가짜의 세상입니다. 진짜인 영적 세계에 우리가 머무르는 방법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고 그 안에 사는 방법 뿐입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혼과 육은 죽고 영원히 사는 영이 남아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살 수 있을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영적 감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영적 세계를 감지할 수 없고 알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우리 물질세계가 영적 세계의 투영된(차원 하락) 세상 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올바르게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 열매가 우리 세계에서 열리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다음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성령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한다면 우리는 성령에 영향을 받게 되며 나의 혼과 육이 점차 성령의 힘에 굴복하게 됩니다.
기도
기도는 영적 세계와의 연결을 강화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영적 세계에 있는 내 영이 하나님의 영과 합일되며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영에 더욱 영향력을 끼치면서 혼과 육을 복종하게 하고 결국 우리 물질 세계의 활동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무엇보다 실체이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에 중독되거나 술에 중독되었을 때 어떻게 해서도 헤어나올 수 없는 경험을 합니다. 악한 영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선한 영에게 영향을 받는 메커니즘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에 노출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것에 중독됩니다. 이는 나쁜 중독이 아니라 좋은 중독입니다. 선한 선순환의 시작이 됩니다.
매일 하나님의 선하고 신실함을 믿고 다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회복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며, 예수님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걸어가는 행동으로 우리는 마땅히 천국에 머무를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됩니다.